Posts tagged JAN

Buan, Korea, 20160124

다시 눈떠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하얬다. 꽤 긴 시간 동안 눈 속에 파묻힌 도로 위를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서 움직였다. 도로 곳곳에 눈이 다져져 미끄러운 구간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 오르막길 앞에서 줄지어 멈춰 섰다. 따뜻한 음악을 들으며 눈 속 세상을 ...

Gochang, Korea, 20160123

눈을 보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가 고창이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목적지에 상관없이 폭설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려가는 내내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봄철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학원농장으로 향하기 전 읍내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

Gunsan, Korea, 20130105-2

이따금씩 아주머니들의 안부 인사가 시끌벅적 들려왔다. 할아버지들은 가만히 서 계셨지만 왠지 가까이하기 어려운 근엄함이 느껴졌다. 걸었던 대부분의 골목과 동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텅 비어있었지만 포근했다. 철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어디가 끝인지 ...

Jeju, Korea, 20160131-2

우리는 마치 (가본 적도 없는) 스칸디나비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같이 걸은 발자국의 꼬리가 꽤 길어졌을 무렵 각자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고,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자아내는 나의 시간적 배경에 대해 얘기했다. ...

Jeju, Korea, 20160131-1

지난밤엔 기절했다. 올랐던 한라산에 체력을 잃었고, 마셨던 한라산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매번 그랬듯, 방이 아닌 평상에서 잠을 깼다. 한참을 비몽사몽한 뒤에야 몸을 일으켰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그대로 좀 더 빈둥빈둥 대다가, 연통의 잿가루를 ...

Seoul, Korea, 20160110

믿음이란 건 쉽게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지만, 쉽게 주거나 받아서도 안된다. 본디 그것 자체가 겹겹이 쌓인 시간이 천천히 굳어진 후에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시간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가게 되면, 잘 굳지 않거나 굳어진 후에도 매우 ...

Jeju, Korea, 20160130-2

나는 설국을 다시 보고 싶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혹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세상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일본의 홋카이도나 시라카와를 가볼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게으른 바람에 비싸져버린 비행기 값과 혼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져버린 탓에 결국 포기했다. 대신 ...

Jeju, Korea, 20160130-1

나흘짜리 제주여행이라니, 여태 제주여행 중 가장 짧았다. 생각해둔 목적지는 한라산뿐이었고 그마저도 둘째 날 갈지 셋째 날 갈지 제주에 도착해서도 몰랐다. 늦은 시간 도착해 짐을 푸는데 같은 방 여행객의 짐이 누가 봐도 산행 차림이었다. 한라산 가시냐는 물음으로 ...

Jeju, Korea, 20160129

늘 그렇듯 묵혀있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제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여행이 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 밤은 참 억울했다. 휴가를 허락받는 타이밍의 문제로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고, 눈치를 한참 보는 바람에 퇴근이 늦었다. 하필, 아니 당연하게도 짐을 싸 ...

2016.1M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에 특별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생각하고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뿐.  

Asan, Korea, 20130102

그해엔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시간이 허락하기만 하면, 발 닿고 바퀴 구르는 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자친구는 있었지만, 혼자 떠나기도 했다. 걸을 수 있으면 좋았고, 새로운 곳이면 더 좋았다. 명절 땐 조금 특별하게 어머니와 동생이 나의 움직임에 동행하기도 ...

Sapporo, Japan, 20140103-2

그전에는 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눈이 몹시 좋아졌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하얀 세상에서 실루엣이 되었고, 색들은 색 자체로 빛이 났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머리나 마음 어딘가에 그 존재가 짙게 자국 남았다. 그 뒤로 많은 계획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