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묵혀있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제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여행이 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 밤은 참 억울했다. 휴가를 허락받는 타이밍의 문제로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고, 눈치를 한참 보는 바람에 퇴근이 늦었다. 하필, 아니 당연하게도 짐을 싸 놓지 않은 상태라 마음이 조급해졌고, 금요일 저녁에 택시가 쉬이 잡힐 리 만무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비행기 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앞으로 착하게 살겠노라 다짐도 했다. 숨을 헐떡이며 탄 비행기 안에서 받은 소개팅녀로부터의 문자에는 “네가 아직 누구를 만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다음 만남을 거절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딱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오해를 가진 채로 사이를 진전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러겠노라 답장했다. 잠깐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잔뜩 피로해진 몸을 삭이다 잠이 들었다.
잠깐의 충격과 미세한 분주함에 눈을 떴다. 그 어느 때보다 극적으로 도착한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내다본 창밖으로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내 대신 하늘이 울고 있었다. 하늘은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우산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