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Korea, 20160130-2

나는 설국을 다시 보고 싶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혹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세상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일본의 홋카이도나 시라카와를 가볼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게으른 바람에 비싸져버린 비행기 값과 혼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져버린 탓에 결국 포기했다. 대신 2015년 2월의 어느 겨울날 제주에서 만난 여행객의 핸드폰에서 보았던 한라산의 겨울을 직접 보기로 마음먹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하게 워커에 아이젠을 차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눈밭을 내디뎠지만, 마음과 달리 저질이 된 체력에 오르는 내내 사투를 벌였다. 윗세 오름 대피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같은 시간 오르기 시작했던 한 중국인이 중국 말로 말을 걸어왔다. 여러 중국 출장의 경험으로 갈고닦은 짧디짧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내가 신고 온 신발을 보고 당연히 한국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고 했다. 물론 다 알아들은 것은 아니고 눈치를 보아하니 그런 뜻인 것 같았다. 드디어 윗세 오름 대피소를 팔 벌려 껴안으며 첫 등정을 만끽하려던 순간엔 이곳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왔던 기억이 났다. 영실 쪽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의 절반 정도는 엉덩이를 깔고 썰매 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행여나 대여한 아이젠이 망가질까 봐 잠시 풀었더니, 봅슬레이가 따로 없었다. 청바지가 찢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신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날 저녁엔 숙소를 옮겨 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고, 마침 사람들과 한라산 다녀온 얘기를 나누다 보니 썰매 타고 내려온 동영상을 미처 찍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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